위대한 칸, 칭기즈의 비밀
전통적으로 유목생활을 했으며 같은 말을 쓰고 있다. 본거지는 지금 몽골 인민공화국(외몽골)과 중국의 네이멍구 자치구[內蒙古自治區]로 나뉘어져 있다. 전쟁과 거주지 이동의 과정을 거치면서 몽골족은 중앙 아시아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몽골족은 팔다리가 짧고 땅딸막한 체격에 피부는 황색 또는 암갈색이며 머리카락은 검고 외견상 숱이 적다. 단두형(短頭形) 머리에 얼굴은 달걀형 또는 둥근형이며 불룩한 광대뼈와 눈·코 생김새가 전체적으로 넓적한 느낌을 준다. 안구의 축이 기울어져 있어 특유의 몽골 사시(斜視)를 하고 있으며 눈빛은 검거나 갈색이다. 키가 작아서 대부분 168cm를 넘지 않는다. 때로는 바로 이웃한 중국 한족(漢族)이나 퉁구스족·돌궐족과의 혼혈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모든 몽골족은 유전학적으로 비슷하다. 몽골족은 몽골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 인구의 1/5 가량이 몽골족이다. 중국의 신장[新疆 : 중국령 투르키스탄]·칭하이[淸海]·티베트·만주(둥베이[東北] 지구) 등지와 시베리아에서 살고 있으며 몽골어 방언들을 쓴다.
오늘날 몽골족에 속하는 민족으로는 몽골 국민의 3/4을 차지하는 할하족 및 여러 부족이 있다(→ 색인 : 할하족). 그중 하나인 오이라트족의 후예인 서(西)몽골족(칼미크족 ·오이라트족 )에는 소련, 중국 서부, 몽골 등지에 사는 도르베트(또는 데르베트)·올뢰트(Ol?t)·토르구트·부자와 등이 속한다.
이밖에도 차하르·우라트·카르친·오르도스 몽골족(네이멍구 자치구), 바르구트·다구르 몽골족(만주), 몽구오르족(간쑤 성[甘肅省]), 몽골 본토 북쪽의 바이칼 호 양쪽에 자치공화국이 있는 러시아의 부리야트족 등이 있다.
남자들이 목축과 병역을 맡는 전통적인 몽골족 사회는 가족·씨족·부족을 기본단위로 했으며 공통의 부계 조상에게서 내려오는 씨족명이 있었다. 부족 이름은 씨족들이 부족으로 합쳐질 때 가장 강력한 씨족 이름을 따서 지었다. 부족 안에서 힘이 약한 씨족은 자체 우두머리와 가축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가장 세력이 큰 씨족에 종속되었다. 부족통일시대에는 칸(몽골족의 왕)이 각 부족의 영토마다 지휘관들을 배정하여 군사력을 모으고 세금을 걷어들이도록 했다. 이들은 부족간의 분열과 통일을 되풀이하는 역사를 거쳤다.
흉노족은 한때 몽골을 지배했다. 이들은 연합제국을 이루고 수세기 동안 중국의 신흥국 진(秦)나라와 전쟁을 벌이다가 48년 무너졌다.
그뒤 나타난 부족이 거란족이다. 이들은 때때로 아바르족이나 오르곤 돌궐족, 위구르족 등과 동일시되기도 했다. 거란족은 만주와 화북지방을 다스리면서 그곳에 요(遼 : 907~1125)나라를 세우고 '전(全)몽골 동맹'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부족연합체와 동맹을 맺었다.
요가 망한 다음에는, 몽골족으로서 동맹에 가입하지 않았던 타타르족이 새롭게 나타나 거란족의 뒤를 이은 여진족과 동맹을 맺었다.
이 시기에 칭기즈 칸(1162~1227)은 동맹 안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1206년 칸이 되었다. 그는 능란한 솜씨로 동맹에 들지 않은 몽골족들을 장악해나갔다. 1207~27년 사이 원정에 나서 서쪽으로는 러시아, 동쪽으로는 화북까지 영토를 넓혔으며 1215년에는 베이징을 점령했다. 칭기즈 칸은 중국 서북지방에서 서하(西夏)를 정벌하던 도중에 죽었다.
몽골 제국은 칭기즈 칸의 네 아들에게 넘어갔으며 그 가운데서 오고타이가 전체지휘권을 잡았다.
주치는 러시아까지 이어지는 서부 제국을 넘겨받았으며
차가타이는 이란 북부와 신장 남부를 차지했다.
오고타이는 신장 북부와 몽골 서부를 물려받았고,
톨루이는 몽골 동부를 넘겨받았다.
오고타이는 자기 형제들을 지배하면서 정복사업을 계속해나갔다.
서쪽으로는 주치의 후계자인 바투가 다스리는 킵차크 한국(汗國)이 러시아를 점령하고 동유럽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동쪽으로는 중국 내부로 진격해들어갔다.
1241년 오고타이가 죽자 각 분파들은 권력을 잡기 위한 전쟁과 모략을 일삼기 시작했다.
1248년 톨루이의 아들인 몽케가 최고 칸이 되어 영토확장정책을 계속 밀고나갔다. 몽케의 후계자인 쿠빌라이 칸은 중국을 정복하고 수도를 몽골에서 베이징으로 옮겼다. 이즈음 몽골 제국의 위세는 절정에 이르렀다.
몽골족의 칸들은 신하와 이민족(중국인)의 힘을 빌려 제국을 다스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권력은 몽골족의 손을 벗어나 관료들에게로 넘어갔다. 이에 더하여 서로 다른 한국들 사이에 불화가 끊이지 않아 제국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367년 한족이 세운 명나라에게 중국의 패권을 빼앗겼다.
같은 시기에 페르시아의 일 한국도 무너졌으며 서방에 있던 킵차크 한국은 1380년 러시아가 이끄는 동맹군에게 패했다. 머지 않아 제국은 몽골 본토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한국들로 줄어들었다. 명이 몽골에 쳐들어오면서 마침내 몽골 통일제국은 끝나고 말았다.
15세기와 16세기를 거치는 동안 중심세력을 지닌 부족이 여러 번 바뀌었다. 군사적 성과를 거두기는 했으나 오래가지 못했으며 정치면에서 부족간에 느슨한 동맹관계를 이룬 것이 성과의 전부였다.
처음에는 서몽골의 오이라트족이 나서서 명의 힘이 크게 미치지 못했던 티베트와 신장으로 쳐들어갔다. 그 다음에는 황허 강 유역에 있던 오르도스족이 오이라트족에게 도전하고 나서서 명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마지막으로 패권은 차하르족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부족들이 떨어져나가고 만주족 세력이 뚜렷해지기 시작하면서 리그단 칸(1603~34)이 이끄는 동맹은 무너지게 되었다. 몽골은 이 시기에 부족통합의 수단으로 티베트 불교를 널리 받아들이기도 했다.
만주족은 마침내 2단계에 걸쳐 몽골을 정복하고 이를 내몽골과 외몽골로 나누었다.
중국에 쳐들어갔을 때 만주족은 몽골 동부에 있는 할하족을 동원했으며 1691년 공식적으로 몽골 남부와 동부를 점령했다. 이것이 내몽골이 되었다.
서부 몽골에 있던 오이라트족이 만주족에 대항하여 자기 세력을 중심으로 몽골 부족들을 통합하려 했으나 할하족은 만주족과 힘을 합해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결과 이들은 1759년 외몽골을 손에 넣었고 오이라트족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만주족의 승리로 몽골족의 부족전쟁은 끝이 났다.
많은 부족들은 이웃지역으로 흩어졌으며 몽골은 2개의 정치단위로 나누어졌다. 만주족 지배 아래서 몽골족은 별다른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중국인 이주민들이 통상과 교역을 장악하고 내몽골에 있는 목초지를 일구었다. 내몽골에서는 이들 인구가 몽골 원주민보다 더 많아지기까지 했다. 두 지방에 문화 차이가 점점 커져갔으며 내몽골은 문화와 인구 면에서 갈수록 더 중국화되어갔다.
20세기에 들어와 내몽골과 외몽골 지방에는 불만스런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었으며 러시아와 일본의 책동이 이를 더욱 부채질했다. 1911년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난 뒤 몽골은 독립을 선언했으나 혼미를 거듭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1921년 몽골과 러시아 연합군이 울란바토르를 점령하고 몽골 인민공화국을 세웠다. 내몽골과 외몽골을 통일하려는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두 지역에서 빚어진 정치적 혼란상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외몽골과 내몽골이 서로 믿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이기도 했다.
하나라
위의 오제중 당요가 우순에게 왕위를 넘겨주었고, 우순은 다시 우라는 사람에게 왕위를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우 역시 익이라는 사람을 골라 왕위를 넘겨주었는데, 이 익이라는 사람이 그것을 거부하고 달아났기 때문에 우의 아들인 계가 왕위를 이어받았답니다. 이때부터 수백년간 이어지는 왕조를 하왕조라 하며, 하왕조는 마지막 걸왕에 이르러 그 세력이 크게 약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은나라
하나라 걸왕은 유시씨를 토벌하고 말희란 여자를 첩으로 두게 됩니다. 그런데 이 말희는 자신의 조국이 걸왕의 손에 무참히 짓밟힌것을 한탄하여, 계획적으로 걸왕의 폭정을 유도했다고 하는군요. 여하튼 걸왕의 폭정이 계속되자, 일찍이 걸왕에 의해 하대라는 지방에 감금당하였다가 풀려난 탕이라는 인물이 걸왕을 몰아내고 하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이리하여 성립된 나라가 은나라이며, 탕은 항상 스스로를 무공이 뛰어나다고 했으므로 그를 은나라 무왕이라고 부르게 되었답니다. 이 은나라는 29대(혹은 30대,31대라고도 함)를 내려오다가 주(紂)왕에 대에 이르러 주(周)나라 무왕에게 멸망당하게 됩니다.
주나라
은나라의 주왕은 원래는 매우 현명한 인물이며 힘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기 기주의 제후 유소씨를 토벌했을때 유소씨는 달기라는 미녀를 주왕에게 바쳤는데, 주왕은 달기를 지나치게 총애하여 점차 현명함을 잃어갔다고 합니다. 그의 폭정은 갈수록 심해졌고, 이를 보다못한 서기의 제후 서백 희창이 군대를 내어 은나라 주왕을 토벌할것을 결의하게 됩니다. 그러나 희창은 북백을 정벌한지 1년만에 사망하고, 그의 아들 희발이 태공망(강상)등의 보좌로 주나라를 건립, 스스로 무왕이 되어 군대를 이끌고 은나라를 정벌하였습니다. 그후 주나라가 천하의 주인이 되어 여러대에 걸쳐 중국을 지배하였습니다.
춘추
춘추시대는 주나라 유왕이 절세미녀 포사에게 빠져 국정을 망치고 견융족에게 살해당한뒤, 그 뒤를 이은 평왕이 수도를 낙양으로 옮기고부터 시작되게 됩니다. 춘추시대의 열국에 대한 변천은 너무 복잡해서 생략하겠습니다.
전국
전국시대는 춘추시대의 강국중 하나인 진(晉)나라가 조,한,위의 세국가로 분리된 후의 시대를 말합니다.(역사서에 따라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은 다른데, 단순히 조,한,위가 갈라진 다음부터를 전국시대로 보는 기준과, 주나라에서 이 세나라를 왕으로 정식 승인한 다음부터를 전국시대로 보는 기준이 있습니다. 두 기준은 50년의 차이가 납니다.) 역시 전국시대의 열국의 상황도 복잡해서 생략하겟습니다.
진(秦)
전국시대를 마감한 나라는 진나라로써, 진나라는 열정적인 군주 영정(시황제)이 즉위한 후 6국을 병합하여 통일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러나 통일 진나라는 가혹한 법과 과중한 부역등으로 백성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있었고,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불과 3대 15년만에 망하게 되었습니다.
초,한 양분시대
진나라가 멸망한 후, 항우(항적)의 초나라와 유방의 한나라가 격렬한 대립을 하게 됩니다. 처음 유방은 항우의 명령을 받고 남정에 도읍하여 한나라 왕이 되었지만, 이에 불만을 품고 점차 힘을 길러 관중으로 나와 항우에게 도전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유방이 수차례 패해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한신,경포,팽월등의 활약에 힘입어 광무에서 항우를 격파하고 해하에서 그를 포위하여 자결하게 만듭니다.
전한
한나라의 고조 유방이 초나라를 거꾸러 뜨린뒤 황제에 올라 장안에 도읍하여 성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전한은 평제의 대에 이르러 외척인 왕망이 평제를 독살하고 어린 자영을 황제로 올린뒤, 자영으로부터 제위를 찬탈함으로써 멸망당하게 됩니다.
신
왕망이 세운 국가로 아주 잠깐 존재하였습니다.
후한
한나라 황족인 유수(광무제)가 주변 대소군벌들과 왕망을 토벌하여 세운 국가입니다. 후한은 외척과 환관으로 인해 매우 혼란스러웠으며, 마지막 황제인 헌제가 위나라 조비에게 제위를 선양하여 멸망하였습니다.
삼국
삼국은 유비의 촉한 조조,조비대로 이어지는 위, 손권의 오를 말합니다. 가장 먼저 멸망당한 나라는 촉한으로써, 위나라의 공격에 촉한의 2대째 황제인 유선이 항복하여 멸망하였습니다. 그다음 멸망한 나라는 위인데, 위나라는 마지막 황제인 조환이 진왕 사마염에게 제위를 양위하여 멸망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진나라가 오나라를 병합하고 오나라 황제 손호의 항복을 받아냄으로써 천하를 통일하였습니다.
진(晉)
진나라는 팔왕의 난이 일어나 기틀이 흔들리게 되었으며, 또 영가의 난이 발생하여 일시적인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그뒤 진나라 왕족과 호족들이 강동의 건업에 도읍을 세워 진나라를 다시 건립하였는데, 이를 동진이라 부릅니다.
오호 십륙국
오호는 흉노,갈,저,강,선비의 다섯 이민족들을 말하며 이들이 중원땅에 각기 나라를 세우고 경쟁을 하였기 때문에 이시대를 오호 십륙국시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역시 열여섯 나라의 흥망을 다 말하는 것은 복잡하므로 생략합니다.
남북조
북조는 선비족 출신의 탁발규가 북위를 세우고 중국 북부를 통일함으로써 오호십륙국 시대의 종지부를 찍고 성립하였습니다. 얼마뒤 북위는 동위로 이어지고, 이밖에도 북제와 북주등의 나라가 난립하였습니다.
남조는 동진이 송나라에 멸망당한 뒤, 제-양-진 의 순서로 왕조가 교체됩니다.
수
북주의 수국공 양견이 황제인 정제를 몰아내고 수나라를 건립하여 황제가 된 후, 남조의 진나라를 토벌하여 중국을 통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수나라는 무리한 토목공사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 고구려 원정의 실패등으로 나라가 기울어, 결국 이연의 반란으로 멸망당하게 됩니다.
당
당의 고조 이연이 수나라를 몰아내고 세운 국가입니다. 그러나 당나라는 안사의 난과 황소의 난을 겪으며 그 국세가 크게 기울었으며, 주전충이 황제인 애제로부터 양위를 받아 후량을 건국함으로써 멸망하였습니다.
5대 10국
5대는 후량,후당,후진,후한,후주의 다섯 왕조를 말하며,
10국은 오,남당,민,초,형남,전촉,후촉,남한,북한의 열 왕조를 말합니다.
역시 5대 10국 각 국가의 흥망은 너무 복잡한 관계로 생략하겠습니다.
송
송나라는 후주의 장군 조광윤이 황제인 공제로부터 양위를 받아 건국한 국가입니다. 조광윤은 곧이어 중국 통일작업에 착수하여, 형남과 후촉,남한,남당,오월을 차례로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송나라시대에는 요(걸안)나라와 서하등의 침략에 계속 시달렸으며, 결국에는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에 밀려 남쪽으로 이주하였습니다.
남송
금나라에 의해 밀려난 남송은 얼마간 국가를 유지했지만, 금나라를 멸망시킨 몽고족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였습니다.
요
요는 걸안족의 야율야보기가 세운 국가입니다. 요나라는 세력을 크게 확장하여 송나라 북부지방을 점령하는 등 기세를 떨쳤지만, 금나라와 송나라의 협공으로 멸망당하였습니다.
금
금나라는 여진족의 나라입니다. 원래 요나라의 지배를 받으며 이리저리 흩어져 생활하고 있었는데, 유능한 족장 아골타가 나타나 전 부족을 통합하고 금나라를 세워 요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그뒤 금나라는 송나라마저 공격하여 강남으로 몰아내고 중원을 장악하였지만, 북쪽에서 일어난 몽고족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였습니다.
원
몽고족의 영웅 테무친이 몽고의 전 부족을 통합한뒤, 금나라를 멸망시키고 꾸준한 정복사업을 하여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습니다. 뒤의 쿠빌라이 칸대에 이르러서 몽고족은 원나라를 건립하였으며, 남송을 멸망시켜 전 중국을 통일하였습니다.
명
원나라 말기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백련교(명교)출신의 주원장이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명나라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명나라는 내부의 부패와 임진왜란당시 조선파병등으로 그 힘을 상실하였으며, 이자성의 반란으로 멸망당하고 맙니다.
청
명나라의 지배를 받던 만주족들이 누르하치의 지휘아래 부족을 통합하여 청나라를 건국하고, 그의 아들 홍타시가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나라를 세운 이자성을 토벌하여 중국을 통일하였습니다. 그리고 청나라는 뒷날 서양 개국등으로 나라가 흔들린뒤, 각지에서 군벌이 일어나 멸망하고 맙니다. 또한 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는 뒷날 일본 괴뢰국인 만주국의 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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