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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우리나라 있는 세계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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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세계 문화 유산의 우수성

 

1. 종묘

 

- 조선 시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왕실의 사당으로 지금까지 600여 년을 이어 오고 있다.

 

- 전통적인 의식과 제사에 쓰이는 음악 등 오랜 전통과 관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우수한 문화 유산이다.

 

- 종묘 제례와 종묘 제례악은 세계 무형 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2. 화성

 

- 조선 시대 임금 정조는 아버지 사도 세자의 능을 수원 남쪽의 화산으로 옮기면서 성을 쌓았는데

 

이것이 화성이다.

 

- 실학자 정약용은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한 거중기를 사용하여 화성을 지었다.

 

3. 석굴암

 

- 2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 바깥쪽의 방은 네모 모양으로 땅을 상징하고, 부처님이 있는 안쪽 방은 둥근 모양으로 하늘을 상징한다.

 

- 부처님이 있는 왼쪽 방은 천장을 둥글게 쌓아 올렸고, 방과 천장, 그리고 부처님의 크기가 알맞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뛰어난 건축 기술을 보여 주는 문화 유산이다

 

창덕궁

창덕궁은 사적 제12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돈화문(보물 제383호), 인정문(보물 제813호), 인정전(국보 제225호), 대조전(보물 제816호), 구선원전(보물 제817호), 선정전(보물 제814호), 희정당(보물 제815호), 향나무(천연기념물 제194호), 다래나무(천연기념물 제251호)등이 지정되었다. 창덕궁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수원화성

수원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팔달문(보물 제402호), 화서문 (보물 제403호), 장안문, 공심돈 등이 있다. 수원화성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석굴암, 불국사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불국사는 사적·명승 제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불국사내 주요 문화재로는 다보탑(국보 제20호), 석가탑(국보 제21호), 청운교와 백운교(국보 제23호), 연화교와 칠보교(국보 제22호),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 비로자나불(국보 제26호)등이 있으며, 불국사는 1995년 12월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해인사장경판전

해인사 장경판전은 국보 제5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서는 대장경판 81,258판(국보 제32호), 고려각판 2,725판(국보 제206호), 고려각판 110판(보물 제734호)이 있으며,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종묘

종묘는 사적 제125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정전(국보 제227호), 영녕전(보물 제821호), 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중요무형문화제 제56호)가 있으며,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경주역사유적지구

1.남산지구(사적 제311호)
보리사 마애석불(지방유형문화재 제193호)
경주남산 미륵곡 석불좌상(보물 제136호)
경주남산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 제186호)
경주남산용장사곡 석불좌상(보물 제187호)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
천룡사지 삼층석탑(보물 제1188호)
남간사지 당간지주(보물 제909호)
남간사지 석정(지방문화재자료 제13호)
경주남산리 삼층석탑(보물 제124호)
경주배리 석불입상(보물 제63호)
경주남산 불곡 석불좌상(보물 제198호)
경주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보물 제199호)
남산 칠불암 마애석불(보물 제200호)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보물 제201호)
경주 삼릉계 석불좌상(보물 제666호)
남산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지방유형문화재 제19호)
남산 삼릉계곡 선각 육존불(지방유형문화재 제21호)
경주남산 입곡 석불두(지방유형문화재 제94호)
남산 침식곡 석불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12호)
남산 열암곡 석불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13호)
남산 약수계곡 마애입불상(지방유형문화재 제114호)
남산 삼릉계곡 마애 석가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58호)
남산 삼릉계곡 선각 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59호)
경주배리 윤을곡 마애불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95호)
배리 삼릉(사적 제219호)
신라일성왕릉(사적 제173호)
신라정강왕릉(사적 제186호)
신라헌강왕릉(사적 제187호)
지마왕릉(사적 제221호)
경애왕릉(사적 제222호)
신라내물왕릉(사적 제188호)
경주포석정지(사적 제1호)
경주 남산성(사적 제22호)
서출지(사적 제138호)
경주나정(사적 제245호)
경주남산동 석조감실(지방문화재자료 제6호)
백운대 마애석불입상(지방유형문화재 제206호)

2.월성지구
경주 계림(사적 제19호)
경주월성(사적 제16호)
경주임해전지(사적 제18호)
경주 첨성대(국보 제31호)
내물왕릉, 계림, 월성지대(사적및명승 제2호)

3.대능원지구
신라 미추왕릉(사적 제175호)
경주황남리고분군(사적 제40호)
경주노동리고분군(사적 제38호)
경주노서리고분군(사적 제39호)
신라 오릉(사적 제172호)
동부사적지대(사적 제161호)
재매정(사적 제246호)

4.황룡사지구
황룡사지(사적 제6호)
분황사 석탑(국보 제30호)


5.산성지구
명활산성(사적 제47호)

고창,화순,강화 고인돌유적

 

 

1.고창고인돌유적
고창지석묘군(사적 제391호)
도산리지석묘(전라북도기념물 제49호)

2.화순고인돌유적
화순 효산리 및 대신리 지석묘군(사적 제410호)

3.강화고인돌유적
강화지석묘(사적 제137호)
내가지석묘(인천광역시기념물 제16호)
강화 대산리고인돌(인천광역시기념물 제31호)
강화 부근리점골지석묘(인천광역시기념물 제32호)

 

1.불국사 및 석굴암
사적 및 명승 제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95년 세계문화유산목록에 등록되었다. 경내면적은 11만 7541평이다.
불국사 사적(事蹟)》에서는 이보다 연대가 앞선 눌지왕(訥祗王) 때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였고 경덕왕 때 재상(宰相) 김대성에 의하여 크게 3창()되었다고 하였다. 이상으로 미루어 처음에는 소규모로 창립되었던 불국사가 경덕왕 때의 재상 김대성에 의하여 대대적으로 확장된 것이 확실하다
석굴암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었다. 정식 문화재 명칭은 석굴암석굴이며, 석불사라고도 한다.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進峴洞) 891번지에 있다. 한국의 국보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문화재의 하나이다. 1995년 유네스코에 의해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 종묘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종묘 : 사적 제 125호
서울 종로구 훈정동에 있다. 원래는 정전(正殿)을 가리키며, 태묘(太廟)라고도 한다

3.해인사 장경판고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52호로 지정되었다.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伽倻面) 가야산 남서쪽에 있는 사찰인 해인사는 통일신라 애장왕 3년(802)에 지은 사찰이다.
장경판고는 장경판전(藏經板殿)이라고도 하며,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8만여 장의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로 해인사에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처음 지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기록에 따르면 1481년(성종 12)에 고쳐짓기 시작하여 1488년(성종 19)에 완성했다고 한다.

4.창덕궁 : 서울 종로구 와룡동(臥龍洞)에 있는 조선시대의 궁궐.
서울 종로구 와룡동. 국보 제225호. 임금이 높이 앉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어좌는 중앙에 두고 양쪽에는 대신들의 관직 순서대로 품비석을 세워 정사를 보던 정전.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5.수원화성 : 사적 제 3호 :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성벽.
수원성은 단순히 토축(土築)된 읍성(邑城)이었으나, 조선 정조 때 성곽을 새로이 축조함으로써 이후로는 화성(華城)이라 하였다
정약용(丁若鏞)의 성설(城說)을 설계지침으로 하고, 채제공(蔡濟恭)을 중심으로 조심태(趙心泰) 등의 진력으로 이룬, 뛰어난 과학적인 구조물이다. 돌과 벽돌을 혼용한 과감한 방법, 거중기(擧重機) 등의 기계를 크게 활용하고 용재(用材)를 규격화한 점, 화포를 주무기로 하는 공용화기 사용의 방어구조 등은 다른 성곽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것이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6.경주역사 유적지구
①불교미술의 보고인 남산지구.
②천년왕조의 궁궐터인 월성지구.
③신라 왕을 비롯한 고분군 분포지역인 대능원지구.
④신라불교의 정수인 황룡사지구.
⑤왕경 방어시설의 핵심인 산성지구..로 구분되어 있으며..
52개의 지정문화재가 세계유산지역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7.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유적
2000년 11월 29일 호주 케언즈에서 개최한 세계유산위원회(WHC)의 총회에서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 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로 의결했습니다.
고창고인돌유적은 전라북도 고창군 죽림리와 도산리일대에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동서로 약 1,764m 범위에 442기가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인돌 군집을 이루고 있는 지역입니다
화순고인돌유적은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 일대의 계곡을 따라 약 10㎞에 걸쳐 500여기의 고인돌이 군집을 이루어 집중분포하고 있으며 최근에 발견되어 보존상태가 양호합니다. 또한 고인돌의 축조과정을 보여주는 채석장이 발견되어 당시의 석재를 다루는 기술, 축조와 운반방법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강화고인돌유적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부근리, 삼거리, 오상리 등의 지역에 고려산 기슭을 따라 12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이곳에는 길이 7.1m, 높이 2.6m의 우리나라 최대의 북방식 고인돌이 있으며 우리나라 고인돌의 평균고도보다 높은 해발 100m-200m까지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8, 안동 하회마을과경주 양동 손씨 이씨마을도 가장늦게 2010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창덕궁/석굴암/해인사 장경판전/종묘/수원 화성/경주 역사 유적 지구/고인돌 유적

세계 유산은 유네스코가 인류의 소중한 문화 및 자연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하였다.
세계 유산은 크게 문화유산, 자연 유산, 복합 유산으로 분류되는데, 우리나라에 있는 문화유산은 다음과 같다.

[창덕궁]

1. 건립
1405년(태종 5)에 태자궁으로 조성되었다.

2. 훼손과 복구
임진왜란, 인조반정 등을 겪으며 건물들이 훼손되었고, 화재로 불타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에 의해 훼손되기도 하였다.

3. 궁궐의 구조
(1) 인정전
왕이 나와서 조회를 하던 궁전으로 조선 후기의 건물이며, 국보 제225호이다. 1405년에 세워졌으며, 임진왜란 때 훼손되자 1610년에 중건했고, 1803년(순조 3년)에 불탄 것을 다음해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 대조전
창덕궁의 정침(正寢)으로 보물 제816호이다. 1405년에 건립되었으며 임진왜란과 화재로 소실된 것을 몇 차례 다시 지었다. 또, 1917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자 일본인들은 경복궁의 수천 칸 전각들을 헐어낸 재목으로 대조전과 그 일곽을 복원했다.

(3) 선정전
창덕궁의 편전으로 조선 중기 건물이며 보물 제814호이다. 앞면 3칸, 옆면 3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이다. 창덕궁을 창건할 때 건립되었으나 인조반정 때 소실되어 1647년에 중건했다.

(4) 후원
창덕궁과 창경궁의 뒤쪽 13만 5,200여 평에 조성된 조선 시대 궁궐의 정원이다. 본래 창덕궁의 후원으로 후원(後苑) 또는 왕의 동산이라는 뜻에서 금원(禁苑)이라고 불렀으며, 비원(秘苑)이라는 명칭은 일제 강점기 때 용어이다.

[석굴암]

1. 건립
석굴암은 서기 751년 신라 경덕왕 때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하기 시작하여 서기 774년인 신라 혜공왕 때 완공하였으며, 건립 당시의 명칭은 석불사로 칭하였다.

2. 내부 구조
석굴암의 석굴은 백색의 화강암재를 사용하여 토함산 중턱에 인공으로 석굴을 축조하고 그 내부 공간에는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벽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금강역사상, 천왕상 등 총 39체의 불상을 조각하였다.
석굴암의 석굴은 장방형의 전실과 원형의 주실이 통로로 연결되어 있는데, 360여 개의 판석으로 원형주실의 궁륭천장 등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해인사 장경판전]

1. 건립
해인사 장경판전은 13세기에 만들어진 세계적 문화유산인 고려 대장경판 8만여 장을 보존하는 보고로서 해인사의 현존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장경판전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조선 세조 3년(1457년) 어명으로 판전 40여 칸을 중창하였고 성종 19년(1488년) 학조대사가 왕실의 후원으로 30칸의 대장경 경각을 중건한 뒤 보안당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광해군 14년(1622년)에 수다라장, 인조 2년(1624년)에는 법보전을 중수하였다.

2. 구조
장경판전은 정면 15칸이나 되는 큰 규모의 두 건물을 남북으로 나란히 배치하였다. 장경판전 남쪽의 건물을 수다라장, 북쪽의 건물을 법보전이라 하며 동쪽과 서쪽에 작은 규모의 동·서사간판전이 있다.
해인사의 건축 기법은 조선 초기의 전통적인 목조 건축 양식을 보이는데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은 물론, 건물 내 적당한 환기와 온도·습도 조절 등의 기능을 자연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 판전에는 81,258장의 대장경판이 보관되어 있다.

3. 대장경판의 가치
대장경판의 글자 수는 무려 5천2백만 자로 추정되는데 이들 글자 하나하나가 오·탈자 없이 모두 고르고 정밀하다는 점에서 그 보존가치가 매우 크며, 현존 대장경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는 문화재이다.

[종묘]

1. 건립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유교 사당으로서,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종묘는 태조 3년(1394년) 10월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그 해 12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9월에 완공하였다.

2. 구조
56,503평의 경내에는 종묘정전을 비롯하여 별묘인 영녕전과 전사청, 재실, 향대청 및 공신당, 칠사당 등의 건물이 있다.

(1) 정전: 정전은 처음에 태실 7칸, 좌우에 딸린 방이 2칸이었으나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려 광해군 즉위년(1608년)에 다시 고쳐 지었다. 현재 정전에는 19실에 49위, 영녕전에는 16실에 34위의 신위가 모셔져 있고, 정전 뜰 앞에 있는 공신당에는 조선 시대 공신 83위가 모셔져 있다.

(2) 영녕전: 세종 3년(1421년)에 창건하여 처음에는 태실 4칸, 동서에 곁방 각 1칸씩으로 6칸의 규모였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려 광해군 즉위년에 10칸의 규모로 지었으며 그 후 계속 증축하여 현재 16칸으로 되어 있다.

[수원 화성]

1. 건립
수원화성은 규장각 문신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 《성화주략》을 지침서로 하여, 재상을 지낸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총괄 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1794년 1월에 착공에 들어가 1796년 9월에 완공하였다. 축성 시에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특수하게 고안·사용하여 장대한 석재 등을 옮기며 쌓는 데 이용하였다.

2. 구조
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ha로 동쪽 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의 형태이다.
성의 시설물은 문루 4, 수문 2, 공심돈 3, 장대 2, 노대 2, 포(鋪)루 5, 포(咆)루 5, 각루 4, 암문 5, 봉돈 1, 적대 4, 치성 9, 은구 2등 총 48개의 시설물로 일곽을 이루고 있으나 이 중 수해와 전란으로 7개 시설물(수문 1, 공심돈 1, 암문 1, 적대 2, 은구 2)이 소멸되고 4개 시설물이 현존하고 있다.

[경주 역사 유적 지구]

1. 남산 지구
경주 남산은 야외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신라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곳으로 신라 건국 설화에 나타나는 나정(蘿井), 신라 왕조의 종말을 맞게 했던 포석정(鮑石亭)과 미륵곡 석불 좌상, 배리 석불 입상, 칠불암 마애 석불 등 수많은 불교 유적이 산재해 있다.

2. 월성 지구
월성 지구에는 신라왕궁이 자리하고 있던 월성,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계림(鷄林), 신라 통일기에 조영한 임해전지, 그리고 동양에서 가장 오래 된 천문 시설인 첨성대 등이 있다.

3. 대능원 지구
대능원 지구에는 신라 왕, 왕비, 귀족 등 높은 신분 계층의 무덤들이 있고 구획에 따라 황남리 고분군, 노동리 고분군, 노서리 고분군 등으로 부르고 있다. 무덤의 발굴 조사에서 신라 문화의 정수를 보여 주는 금관, 천마도, 유리잔, 각종 토기 등 당시의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4. 황룡사 지구
황룡사 지구에는 황룡사지와 분황사가 있으며, 황룡사는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되었으나, 발굴을 통해 당시의 웅장했던 대사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으며 40,000여 점의 출토 유물은 신라 시대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5. 산성 지구
산성 지구에는 A.D. 400년 이전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명활산성이 있는데 신라의 축성술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영향을 끼쳤다.

[고인돌 유적]

1. 분포 지역
동북 아시아 지역이 세계적인 분포권에서 가장 밀집된 곳으로 우리나라가 그 중심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약 30,000여 기에 가까운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 세계 유산으로 등록된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은 밀집 분포도, 형식의 다양성으로 고인돌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규명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2. 가치
고인돌은 선사 시대 문화상을 파악할 수 있고 나아가 사회 구조, 정치 체계는 물론 당시 사람들의 정신 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선사 시대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는 보존 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1. 석굴암과 불국사 ( Seokguram Grotto and Bulguksa Temple : 문화, 1995 )
 경주 토함산 중턱에 위치한 8C경 석굴로 내부 본존불상은 결가부좌한 채 동해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석굴 내부 벽면에는 11면 관음보살을 비롯한 보살과 10대 제자들이 매우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는 극동 불교 예술의 진수
 불국사는 석굴암과 같은 시기인 752년에 건립된 것으로 종교 건축의 예외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2. 종묘 ( Jongmyo Shrine : 문화, 1995 )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후의 신위를 모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있는 유교적 전통 신전
 종묘의 건축은 16C이후 현재까지 원형을 잘 보존유지하고 있으며 종묘제례는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제례의식으로서 14C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면면이 전통이 계승되어 내려오고 있다

3. 해인사 장경판전
( Haeinsa Temple Janggyeong Panjeon, the Depositories for the Tripitaka Koreana woodblocks : 문화, 1995) )
 가야산 해인사에는 1237∼1249년까지 제작된 불교경전의 결집체인 8만 여장의 대장경 목판이 보관되어 있다
 장경판전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관 시설로서 보존기술과 장치가 과학적 으로 설계된 15C의 뛰어난 건축물이다

4. 창덕궁 ( The Changdeokgung Palace Complex : 문화, 1997 )
 조선 3대 태종 5년(1405년)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
 1610년 광해군때 부터 정궁으로 쓰이게 된 뒤 1868년 고종이 경복궁을 복원할 때까지 258년동안 조선의 역대 왕들이 정사를 보살폈던 법궁
 돈화문, 선정전, 인정전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조원시설인 후원이 유명하다

5. 수원 화성 ( Suwon Hwaseong Fortress : 문화, 1997 )
 조선 22대 왕인 정조가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화산으로 옮긴 후 축조한 성, 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ha
 축성시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사용
 화성은 중국, 일본 등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평산성의 형태로 군사적 방어 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시설의 기능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동양 성곽의 백미라 할 수 있다.

6. 경주역사유적지구 (Gyeongju Historic Areas : 문화, 2000)
 신라시대 천년의 문화적 업적과 불교 및 세속건축의 발달을 보여주는 뛰어난 유적임


7. 고창·화순·강화 고인돌유적 (Gochang, Hwasun and Ganghwa Dolmen Sites : 문화, 2000)
 기원전 2∼3천년전의 장례 및 의식유적을 만들어냈던 선사시대 기술 및
사회발전을 생생히 보여주는 뛰어난 유적


대한민국의 유네스코 유산 1.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의 유산은 세계문화유산을포함해 세 분야로 나뉘어 있습니다. 우선 세계문화유산을 살펴보시죠.

 

 


창덕궁은 1405년, 즉 조선 제3대 왕인 태종 5년 경복궁의 별궁으로 지어진 궁궐인데요, 임금을 비롯한 왕족이 휴식을 취했던 후원은 아름답기로 특히 유명하죠. 1997년 창덕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유 역시 ‘동아시아 궁정 건축사에 있어 비정형적 조형미를 간직한 대표적 궁으로 주변 자연환경과의 완벽한 조화와 배치가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세계문화유산은 비단 창덕궁만은 아닌데요, 석굴암불국를 비롯해 수원화성, 제주 화산섬 용암동굴 등 전국 곳곳에서 세계적 가치를 지닌 우리의 문화유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계문화유산

등록시기

세계 유산적 가치

해인사장경판전

1995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 고도로 정교한 인쇄술의 극치를 엿볼 수 있는 세계 불교경전 중 가장 중요하고 완벽한 경전. 장경판전은 대장경의 부식을 방지하고 온전한 보관을 위해 15세기경에 건축된 건축물로 자연환경을 최대한 이용한 보존과학 소산물로 높이 평가됨

종묘

1995

제왕을 기리는 유교사당의 표본으로서 16세기 이래로 원형이 보존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독특한 건축양식을 지닌 의례공간

석굴암

1995

신라시대 전성기의 최고 걸작으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이 총체적으로 실현된 유산

불국사

불교교리가 사찰 건축물을 통해 잘 형상화된 대표적인 사례로

아시아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건축미를 지님

창덕궁

1997

동아시아 궁전 건축사에 있어 비정형적 조형미를 간직한 대표적 궁으로 주변 자연환경과의 완벽한 조화와 배치가 탁월함

수원화성

1997

동서양의 군사시설이론을 잘 배합시킨 독특한 성으로서 방어적 기능이 뛰어남. 6km에 달하는 성벽안에는 4개의 성문이 있으며 모든 건조물이 각기 모양과 디자인이 다른 다양성을 지님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2000

거대한 석조로 만들어진 2,000∼3,000년 전의 무덤과 장례의식 기념물. 선사시대의 문화와 기술, 사회현상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적

경주역사지구

2000

한반도를 천년이상 지배한 신라왕조의 수도로 남산을 포함한 경주 주변에 한국의 건축물과 불교 발달에 관한 중요한 유적과 기념물을 다량 보유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2007

지구의 화산 생성과정 연구와 생태계 연구의 중요한 학술적 가치가 있음.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의 아름다운 경관과 생물· 지질 등은 세계적인 자연유산으로서 가치를 지님

조선왕릉

2009

조선왕조의 독특한 장묘 문화와 함께 당시의 세계관, 종교관 및 자연관을 바탕으로 타 유교 문화권 왕릉들과는 다른 형태를 지님. 5백년 이상 존속한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으로 조선시대의 예술적 독창성이 뚜렷이 나타남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

2010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마을.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조선시대 유교적 전통 사상을 잘 반영한 경관 속에 전통 건축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유교적 삶의 양식과 전통문화를 현재까지 잘 계승하고 있음

올 여름 우리나라의 세계문화유산 답사를 떠나보는 것도

의미있고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죠?^^

대한민국의 유네스코 유산 2.인류무형문화유산

유네스코 유산 중 두 번째는 인류무형문화유산입니다.

현재 문화재청에서 2012년 ‘아리랑’의 유네스코 등록을 추진 중이라는 기사를 보신 적이 있나요?아리랑과 같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전승되어 공연예술과 문화적 표현, 각종 지식과 기술을 무형문화유산이라고 합니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목록은 ‘긴급보호가 필요한 무형문화유산목록’‘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나뉘는데요, 대표목록의 경우 각국이 자국의 국내 목록에 등재되어 있는 유산 가운데 관련 공동체의 동의와 기타 등재요건만 갖추어 신청하면 됩니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무한대로 등록할 수 있고요.

현재 대표목록으로

유네스코에 등록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무형문화유산은 총 11건인데요, 아래와 같습니다.

종묘 및 종묘제레악(2001), 판소리(2003), 강릉단오제(2005), 강강술래(2009), 남사당(2009), 영산재(2009), 제주 칠머리당영등굿(2009), 처용무(2009), 가곡(2010), 대목장(2010), 매사냥(2010, 다국적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상 우리는 이러한 유산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무형문화유산의 경우 시대에 따라 버려지는 부분이 있거나 새로운 것이 추가되기도 하기 때문에 유네스코에서 말하는 보호(safeguard)란 본래의 상태를 지킨다는 뜻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 전승시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요.

또한 무형문화유산이 효과적으로 전수될 수 있도록 전문적이면서 전통적인 시식을 갖춘 장인의 활동을 지원해야 하는데요, 우리나라의 경우 1962년 재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장인을 보호, 지원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유네스코 유산 3.세계기록유산


유네스코 유산 중 마지막은 기록유산인데요, 인류의 문화를 계승하는 중요한 유산임에도 불구하고 훼손되거나 영원히 사라질 위험에 처한 기록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1995년 ‘세계기록유산’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기록유산이라고 하면 비디오, 오디오, 음악, 신문, 책 등이 떠오르는데요, 이 밖에도 플라스틱, 파피루스, 양피지, 야자 잎, 나무 껍질, 돌 등과 지도, 자료 그림 등의 비문자 자료, 모든 종류의 전자 데이터가 기록유산에 포함됩니다.

 

 

 

우리나라의 세계기록유산은 아래와 같은데요.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직지심체요절, 승정원 일기, 팔만대장경판, 조선왕조의궤, 동의보감, 일성록, 5.18 민주화운동 기록들

우리나라는 지난 5월 국왕이 직접 작성한 일기인 ‘일성록’‘5.18 민주화운동 기록들’이 등재되면서 세계적으로는 다섯 번째, 아시아에서는 첫 번째로 많은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한 국가입니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경우 국가뿐 아니라 각종 단체, 개인 등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고 해요.

 

얼마 전 중국이 조선족의 아리랑 등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면서 여러 가지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요, 유네스코에 등록된 우리의 유산을 보면서 그동안 너무 가까이 있기에 혹은 자주 접하기에, 또는 익숙하다는 이유로 마음 속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1. 창덕궁(1997년에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주었습니다.)

창덕궁은 조선시대의 전통건축으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한 건축과 조경이 고도의 조화를 표출하고 있으며, 후원은 동양조경의 정수를 감상할 수 있는 세계적인 조형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특징이 있다
오늘날 자연스런 산세에 따라 자연지형을 크게 변형시키지 않고 산세에 의지하여 인위적인 건물이 자연의 수림속에 포근히 자리를 잡도록한 배치는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완전한 건축의 표상이다. 또한, 왕들의 휴식처로 사용되던 후원은 300년이 넘은 거목과 연못, 정자 등 조원시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함으로써 건축사적으로 또 조경사적 측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후원은 태종 5년(1405) 창덕궁을 창건할 때 후원으로 조성하였으며, 창경궁과도 통하도록 하였다.

2. 수원화성
수원화성은 축성시의 성곽이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북수문(화홍문)을 통해 흐르던 수원천이 현재에도 그대로 흐르고 있고, 팔달문과 장안문, 화성행궁과 창룡문을 잇는 가로망이 현재에도 도시 내부 가로망 구성의 주요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등 200년전 성의 골격이 그대로 현존하고 있다. 축성의 동기가 군사적 목적보다는 정치·경제적 측면과 부모에 대한 효심으로 성곽자체가 "효"사상이라는 동양의 철학을 담고 있어 문화적 가치외에 정신적, 철학적 가치를 가지는 성으로 이와 관련된 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있다.

3. 석굴암과 불국사 (1995년 석굴암,불국사가 동시에)
석굴암
조각에 있어서 원숙한 조법과 사실적인 표현에서 완벽에 가까운 석가여래상, 10구의 얼굴과 전신이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 인왕상의 용맹, 사천왕상의 위엄, 주실내의 보살들의 유연 우아한 모습, 나한상들의 개성있는 표현 등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의 최고의 걸작품이라 할 것이다. 

특히, 주실내에 봉안되어 있는 굽타양식의 본존불 석가여래불은 고요하고 결가부좌한 모습, 가늘게 뜬 눈, 온화한 눈썹, 미간에 서려있는 슬기로움, 금방이라도 말할 듯한 입과, 코, 길게 늘어진 귀 등 그 모든 것이 내면에 깊은 숭고한 마음을 간직하도록 조성된 것으로서 세계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미를 대표하고 있다.

이 석굴은 신라시대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며, 그 조영계획에 있어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이 총체적으로 실현된 것이다.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불국사
불국사 전면에서 바라볼때 장대하고 독특한 석조구조는 창건당시 8세기 유물이고 그 위의 목조건물은 병화로 소실되어 18세기에 중창한 것이며, 회랑은 1960년대에 복원한 것이다. 불국사의 석조 구조는 길고 짧은 장대석, 아치석, 둥글게 조출된 기둥석, 난간석 등 잘 다듬은 다양한 형태의 석재로 화려하게 구성되었는데 특히 연화교와 칠보교의 정교하게 잘 다듬은 돌기둥과 둥근 돌난간은 그 정교함, 장엄함과 부드러움이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4. 해인사 장경판전
장경판전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조선 세조 3년(1457) 어명으로 판전 40여 칸을 중창하였고 성종 19년(1488) 학조대사가 왕실의 후원으로 30칸의 대장경 경각을 중건한 뒤 보안당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광해군 14년(1622)에 수다라장, 인조 2년(1624)에는 법보전을 중수하였다. 장경판전은 가야산 중턱의 해인사에 위치한 관계로 서기 1488년 조선 초기에 건립된 후 한번도 화재나 전란 등의 피해를 입지 않았으며, 보존 가치가 탁월한 팔만대장경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장경판전은 세계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며, 해인사의 건축기법은 조선 초기의 전통적인 목조건축 양식을 보이는데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은 물론, 건물내 적당한 환기와 온도·습도조절 등의 기능을 자연적으로 해결할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5.종묘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유교사당으로서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종묘는 태조 3년(1394) 10월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그해 12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9월에 완공하였으며, 곧이어 개성으로부터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신주를 모셨다.
56,503평의 경내에는 종묘정전을 비롯하여 별묘인 영녕전과 전사청, 재실, 향대청 및 공신당, 칠사당 등의 건물이 있다. 정전은 처음에 태실 7칸, 좌우에 딸린 방이 2칸이었으나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광해군 즉위년(1608)에 다시 고쳐 짓고, 그 후 영조 와 헌종때 증축하여 현재 태실 19칸으로 되어있다.

6. 경주역사 유적지구
2000년 12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유산이 산재해 있는 종합역사지구로서 유적의 성격에 따라 모두 5개 지구로 나누어져 있는데 불교미술의 보고인 남산지구, 천년왕조의 궁궐터인 월성지구, 신라 왕을 비롯한 고분군 분포지역인 대능원지구, 신라불교의 정수인 황룡사지구, 왕경 방어시설의 핵심인 산성지구로 구분되어 있으며 52개의 지정문화재가 세계유산지역에 포함되어 있다.

7. 고인돌유적
전라북도 고창군 죽림리와 도산리일대에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동서로 약 1,764m 범위에 442기가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인돌 군집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10톤 미만에서 300톤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으며 탁자식, 바둑판식, 지상석곽형 등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 일대의 계곡을 따라 약 10㎞에 걸쳐 500여기의 고인돌이 군집을 이루어 집중분포하고 있으며 최근에 발견되어 보존상태가 좋다. 또한 고인돌의 축조과정을 보여주는 채석장이 발견되어 당시의 석재를 다루는 기술, 축조와 운반방법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부근리, 삼거리, 오상리 등의 지역에 고려산 기슭을 따라 12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이곳에는 길이 7.1m, 높이 2.6m의 우리나라 최대의 북방식 고인돌이 있으며 우리나라 고인돌의 평균고도보다 높은 해발 100m-200m까지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해인사 장경판전

문화유산 가야산 국립공원에 자리잡은 불교사찰. 지금은 약 250명의 비구와 비구니들이 수행하고 있다. 대승불교의 가장 방대하고 위대한 경전인 팔만대장경의 보관장소이다.

대륙 아시아

국가 대한민국

위치 대구 서쪽, 부산 북서쪽의 해인사

의의 대승불교의 삼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가장 완전한 판본의 보관처

역사

802년 승려 순응과 이정이 절을 세움

1009~1031년 고려 현종 때 첫번째 팔만대장경판의 제작

1087년 팔만대장경 완성

1236~1251년 몽골의 침입 때 소실된 팔만대장경을 고종 때 다시 제작함

1398년 이후 한양의 지천사(支天寺)에서 판본을 보관함

1488년 장경판전 완공

1592, 1597년 왜란

1817년 해인사 화재

1928년 대웅전 중건

1940년 상성각 중건

1967년 명부전 중건

 

11세기 초반에 고려의 지배자는 불경 인쇄를 위해 경판의 제작을 명했다. 부처의 힘을 빌려 북방 적들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방어책의 하나였던 이 과업은 수십년 후에야 완성되었다. 하지만 원래의 기원은 실현되지 못했으니, 1232년 몽골의 침략 때 경판은 화염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조정은 서울 서쪽에 강화도로 피신해 버렸던 것이다. 몽골의 침략이 있고 몇 년 뒤 그곳에서 다시 16년의 대 역사를 통해 두번째로 경판이 제작되었다.

 

해인사는 왜구들의 침략이 빈번했던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가야산의 숲 속에 거의 1200년 동안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해인사는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되었는데, 왕비의 병이 기적같이 나은일 때문에 세워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왕비가 등창으로 시달리고 있을 때 왕은 초당에서 수행을 하고 있던 2명의 스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들은 실로 등창부위를 묶고 그 한 끝을 나무에 묶었다. 그리고 왕비의 병석 옆에서 밤새도록 염불을 했는데, 날이 새자 기적갔이 왕비는 나았고 나무는 말라 죽었다고 한다. 이에 감동한 왕이 해인사의 창건에 착수했다.

 

지금은 예불자나 방문객들 앞에 새로운 기적이 놓여있으니, 팔만대장경의 경판이 바로 그것이다. 산벚나무와 들배나무로 만든 8만 1258개의 경판 양면에는 당시 통용되던 한자로 불경이 새겨져 있다. 한 면에 322자, 따라서 경판하나에 644자가 새겨져 있는 것이다. 이를 8만 1258과 곱하면 5233만 152자가 된다. 물론 모두 뒤집어 새긴 것이다!

 

이 천 년의 걸작은 처음에 밝힌 것처럼 두 번 제작되었다! 판이 갈라지거나 휘는 것을 막기 위해 우선 나무를 가공해야 했다. 통나무를 3년간 바닷물에 담갔다가 같은 크기의 판으로 잘랐다. 그 뒤에 이것들을 다시 소금물에 완전히 담가 끓였다가 조심스럽게 그늘에 말렸다. 그러고 나서 판의 결을 매끄럽게 한 다음에야 비로소 그 위에 글자를 쓰고 파내기 시작했다. 목판을 팠던 이들은 한 자씩 새길 때마다 꼭 부처에게 예를 표했다.

 

그렇다면 과연 부처의 도움이 있었을까? 어떤 판들은 재차 처리되고 다듬어져야 하지 않았을까? 어떤 한자는 62획이 넘는 것도 있어서 실수를 할 가능성은 늘 있었다. 하지만 어떤 경판에서도 오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일단 한자에 통달해 있다는 것을 전재하고, 누군가 지금 이 경판을 읽는다고 하자. 경판 하나를 읽는 데 하루가 걸린다고 치면 평생 읽어도 다 읽을 수 없다. 적어도 223년은 걸릴 것이다.

 

왜구로 인해 해안은 늘 불안했기 때문에 경판은 14세기 말에 내륙 깊숙한 곳으로 옮겨졌다. 균형을 잡아가며 머리에 경판을 하나씩 이고 나른 비구니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금의 장경판전이 완성되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다. 그 후로 해인사에는 7번이나 화재가 났었지만, 장경판전은 늘 화를 면했다. 한국전쟁 당시 나무에 새겨진 부처의 가르침은 다시 한번 화염에 휩싸일 운명에 처했다. 북한군은 해인사 지역에 진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해인사를 폭파하라는 명령은 무시되었고, 다행히 경판이 다시 파괴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부처의 설법과 교단 계율 및 그것을 철학적으로 해석한 내용을 담고 있는 삼장경(三藏經)은 극동에서 가장 오래 되고 가장 완전한 것으로 보전될 수 있었다. -클라우스 레티히-

 

석굴암과 불국사

문화유산 불국사는 석가탑과 다보탑, 백운교와 청운교, 극락전과 종루 등이 유명한 사찰이다. 석굴암은 3.5m높이의 좌상인 본존불이 39인의 관음보살과 10인의 제자에게 둘러쌓여 있는 인공 석굴이다.

대륙 아시아

국가 대한민국

위치 경주 남동쪽 토함산 기슭과 인근

등록 1995년

의의 종교적으로 뛰어난 가치를 지닌 동아시아 건축 문화의 걸작

역사

528 또는 535년 불국사 창건

751~774년 불국사 재창건 및 석굴암 건립

1913~1915년 일제 식민 시대 때 비전문적인 보수작업

1959년 불국사 본전 중건

1962~1964년 공간이 본래 지녔던 이미지를 복원하기 위해 입구를 유리벽으로 막는 등 전문적이 석굴암 복원 작업

 

종묘

문화유산 왕족의 신위와 공자를 모신 곳으로 이곳에서 제례악이 연주되고 제사가 거행되었다. 왕가의 무덤도 있다. 길게 뻗은 영령전, 신하들의 공로를 기리는 공신당, 제사예물을 넣어두는 향대청 등이 있다.

대륙 아시아

국가 대한민국

위치 서울

등록 1995년

의의 왕실과 공자를 모시던 현존 최고(最古)의 묘

역사

1392~1910년 조선왕조 통치기

1394년 종묘 건축

1418~1450년 세종 때 영령전 건축

1967년 영조 사망 이후 마지막으로 왕실의 위폐를 모심

1971년 제례의식 재도입

 

 

수원 화성

문화유산 잘 보존된 6km길이의 성벽과 4대문(창룡문, 장안문, 화서문, 팔달문)이 있는 '꽃의 성'. 포루, 치성이라 불리는 망루와 중앙이 비어 있는 망루라는 뜻의 '공신돈' 등이 유명하다.

대륙 아시아

국가 대한민국

위치 수원

등록 1997년

의의 근대(18세기) 극동 지방의 방어용 건축물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

역사

1776~1800년 정조 통치 기간

1796~1801년 성곽축조

1950~1953년 한국전쟁 동안 파괴

1975~1979년 치밀한 공사 계획과 공사 재료 목록, 또 어떤 건축 기술 등을 사용했는지 수록되어 있는 640쪽에 달하는 건축 보고서 화성성역의궤에 의해 복원

 

창덕궁

문화유산 화려한 정문 돈화문과 국내 건물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 추정되는 명정전, 본래 왕실 구성원만 출입할 수 있었던 비원 등으로 이루어진 왕궁이다.

대륙 아시아

국가 대한민국

위치 서울

등록 1997년

의의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했던 15세기 극동지역 건축문화와 정원 조형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탁월한 유적

역사

1405년 태조 이성계의 여름 별궁. 근처의 정궁(正宮)인 경복궁에 이어 제 2의 궁으로 건축

1485년 세종 때 궁전 정비

1592년 화재로 인해 부분적으로 소실

1611년 재건

1872년 제 2의 궁이라는 지위 상실

1907년 복원

 

경주 역사 지구

문화유산 경주는 신라 천 년(기원전 57~기원후 935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도(古都)로 고대국가의 역사 유적과 유물, 불교 유적 등이 산재되어 있다. 신라의 정치 경제 문화 중심지로서 신라 왕경(王京)의 규모와 찬란했던 도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이곳은 유산의 성격에 따라 5개 지구로 나누어져 있는데 불교 미술의 보고인 남산 지구, 천 년 왕조의 궁궐터인 월성 지구, 고분과 왕릉이 있는 대릉원 지구, 신라 불교의 정수를 담고 있는 황룡사 지구, 경주 방어의 거점이었던 산성 지구로 구분되어 있으며 52개의 지정 문화재가 포함되어있다.

대륙 아시아

국가 대한민국

위치 경상북도 경주시

등록 2000년

역사

기원전 57년 박혁거세가 이곳을 중심으로 서라벌이라는 나라를 세움

65년 국호를 계림으로 고침

307년 국호를 신라로 정하고 이후 992년간 신라의 왕도가 됨

935년 고려가 신라를 합병하면서 처음으로 경주로 불림

940년 대도독부로 승격

987년 동경유수(東京留守)로 이름이 바뀌고 영동도(嶺東道)에 속하게 됨

1012년 다시 경주로 바뀜

1015년 안동대도호부로 개칭

1031년 동경유수로 환원

1202년 경주야별초의 반란으로 지경주사(知慶州事)로 강등

1219년 동경유수로 다시 환원

1308년 계림부윤으로 바뀜

1413년 다시 경주로 전해짐

1896년 경상북도에 속하게 됨

1931년 경주면에서 읍으로 승격

1955년 경주읍과 주변 일부가 통합되어 경주시로 승격

1970년대 국가적인 차원에서 경주개발 사업이 시작되어 유물과 유적 발굴 시작

1979년 유네스코에서 세계 10대 유적지의 하나로 선정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지역

문화유산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이며, 전국적으로 약 3만여 기가 분포되어 있다. 지역에 따라 시기와 형태가 다르게 나타나는데, 그 가운데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은 밀집분포도가 높고 형태가 다양하여 고인돌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알 수 있고 선사 시대의 문화상과 정신세계, 사회구조, 정치체제 또한 엿볼 수 있어 선사 시대 연구에 중요한 사료로 보존 가치가 높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인돌 군집을 이루고 있는 고창 고인돌 유적은 전라북도 고창군 중림리와 도산리 일대에 동서로 약 1764m범위에 걸쳐 10톤에서 300톤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고인돌 442기가 분포되어 있다. 그 형태도 다양하여 탁자식, 바둑판식, 지상석곽형 등이 있다.

 

화순 고인돌 유적은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 일대의 계곡을 따라 약 10km에 걸쳐 500여 기의 고인돌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최근에 발견되어 보존상태가 좋다. 또한 고인돌의 축조 과정을 보여주는 채석장이 발견되어 당시의 석재 기술과 축조, 운반 방법 등을 알 수 있다.

 

강화 고인돌 유적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부근리, 삼거리, 오상리 등의 지역에 120여 기 정도가 분포되어 있다. 또 이곳에는 길이 7.1m, 높이 2.6m의 우리나라 최대 북방식 고인돌이 있으며 우리나라 고인돌 분포 지역의 평균 고도보다 높은 해발 100~200m까지 분포되어 있다.

대륙 아시아

국가 대한민국

위치 전라북도 고창군, 전라남도 화순군, 인천광역시 강화군

등록 2000년


창덕궁은 조선왕조 제3대 태종 5년(1405)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이며 창건시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편전인 선정전, 침전인 희정당, 대조전 등 중요 전각이 완성되었다.
그 뒤 태종 12년(1412)에는 돈화문이 건립 되었고 세조 9년(1463)에는 약 6만2천평이던 후원을 넓혀 15만여평의 규모로 궁의 경역을 크게 확장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40년(1607)에 중건하기 시작하여 광해군 5년(1613)에 공사가 끝났으나 다시 1623년의 인조반정때 인정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다가 인조 25년(1647)에 복구되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화재가 있었으며, 1917년에 대조전·희정당 일곽이 소실되어 1920년에 경복궁의 교태전·강녕전 등 많은 건물을 철거하여 창덕궁으로 이건하였다.

창덕궁은 1610년 광해군때 정궁으로 쓰게된 뒤 1868년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까지 258년 동안 역대 제왕이 정사를 보살펴 온 법궁이었다.

창덕궁 안에는 가장 오래된 궁궐 정문인 돈화문, 신하들의 하례식이나 외국사신의 접견장소로 쓰이던 인정전, 국가의 정사를 논하던 선정전 등의 치조공간이 있으며, 왕과 왕후 및 왕가 일족이 거처하는 희정당, 대조전 등의 침전공간 외에 연회, 산책, 학문을 할 수 있는 매우 넓은 공간을 후원으로 조성하였다.

정전 공간의 건축은 왕의 권위를 상징하여 높게 되어있고, 침전건축은 정전보다 낮고 간결하며, 위락공간인 후원에는 자연지형을 위압하지 않도록 작은 정자각을 많이 세웠다.

 

건물배치에 있어, 정궁인 경복궁, 행궁인 창경궁과 경희궁에서는 정문으로부터 정전, 편전, 침전 등이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되어 궁궐의 위엄성이 강조된 데 반하여, 창덕궁에서는

정문인 돈화문은 정남향이고, 궁안에 들어 금천교가 동향으로 진입되어 있으며 다시 북쪽으로 인정전, 선정전 등 정전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편전과 침전은 모두 정전의 동쪽에

전개되는 등 건물배치가 여러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날 자연스런 산세에 따라 자연지형을 크게 변형시키지 않고 산세에 의지하여 인위적인 건물이 자연의 수림속에 포근히 자리를 잡도록한 배치는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완전한

건축의 표상이다. 또한, 왕들의 휴식처로 사용되던 후원은 300년이 넘은 거목과 연못, 정자 등 조원시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함으로써 건축사적으로 또 조경사적 측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후원은 태종 5년(1405) 창덕궁을 창건할 때 후원으로 조성되었으며, 창경궁과도 통하도록 하였다.

대부분의 정자는 임진왜란때 소실되었고 지금 남아 있는 정자와 전각들은 인조 원년(1623)이후 개수·증축된 것이다. 이 곳에는 각종 희귀한 수목이 우거져 있으며, 많은 건물과 연못

등이 있어 왕과 왕비들은 이곳에서 여가를 즐기고 심신을 수양하거나 학문을 닦고 연회를 베풀었다.

창덕궁은 조선시대의 전통건축으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한 건축과 조경이 고도의 조화를 표출하고 있으며, 후원은 동양조경의 정수를 감상할 수 있는 세계적인 조형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특징이 있다.
창덕궁의 역사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궁궐지」, 「창덕궁조영의궤」, 「동궐도」 등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1830년경에 그린 「동궐도(국보 제249호)」가 창덕궁의

건물배치와 건물형태를 그림으로 전하고 있으며, 궁궐사와 궁궐건축을 연구 고증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창덕궁은 사적 제12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돈화문(보물 제383호), 인정문(보물 제813호), 인정전(국보 제225호), 대조전(보물 제816호), 구선원전(보물 제817호),

선정전(보물 제814호), 희정당(보물 제815호), 향나무(천연기념물 제194호), 다래나무(천연기념물 제251호)등이 지정되었다. 창덕궁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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