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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석산은 고구려의 역사를 알고 있다 1. 요동 공손씨 정권의 흥망 중원에 풍운이 몰아치고 있었다. 풍운은 교룡들의 용틀임을 부른다. “푸른 하늘 이미 죽었으니(蒼天已死) 마땅히 누런 하늘이 서리라(黃天當立)” ‘황건 농민혁명’의 구호이다. 역사는 아직도 이를 ‘황건적의 난’으로 부른다. 후한 말 외척과 환관들의 전횡으로 정치는 썩고, 호족과 지주들에 의한 토지겸병과 수탈로 민중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민중들은 후한의 왕조를 부정하고 새 세상을 꿈꾸었다. 서기 184년 일어난 ‘황건 농민혁명’은 204년까지 장장 20여 년 동안 끈질기게 이어졌고, 그 여파로 후한은 결국 220년 몰락하였다. 그러나 민중들이 꿈꾸었던 태평성대는 오지 않았다. 후한의 왕조를 대신하여 위‧오‧촉 삼국과 요동의 공손씨 정권이 일어나 중원의 패권을 다투었을 뿐이다. .. 더보기
바다 동쪽에 강성한 나라 '해동성국' 1.바다 동쪽에 강성한 나라 '해동성국'!~ 흑수말갈! 발해 견제, 당에 귀의하다!~ 중국 산둥성 동북쪽에 위치한 등주. 높은 절벽으로 둘러싼 난공불락의 요새다. 732년 이곳에 대군이 나타났다. "발해 말갈이 등주를 공격하여 자사 위준을 죽였다." - 구당서 기습공격을 감행한 이들은 순식간에 성을 함락하고 자사 위준을 죽였다. "발해라고 하면 대조영이 고구려를 계승해 세운 나라 정도로 알고 계실 겁니다. 헌데 발해가 어떤 나라였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신생국이었던 발해가 어떻게 당나라를 선제공격 할 수 있었을까요? 그 유례없던 정벌을 감행한 사람은 바로대조영의 맏아들 무왕이었습니다." 중국 북동부에 위치한 지린성 둔화(敦化)시. 시 외곽 벌판 한가운데 우뚝 솟은 산이 있다. 해발 600미터, .. 더보기
광개토태왕이 대국을 건설하기 이전 고구려는 국가적 위기를 겪었다. 광개토태왕이 대국을 건설하기 이전 고구려는 국가적 위기를 겪었다. 하나는 11대 동천왕 때 위나라의 공격으로 고구려 도성인 환도성이 함락되고 동천왕이 남옥저까지 피신한 것이요, 또 하나는 16대 고국원왕 때 모용선비가 세운 전연의 공격으로 수도인 환도성이 함락되고 태후 주씨와 왕후, 그리고 부왕인 미천왕의 시신이 탈취당했을 뿐 아니라, 백제와의 싸움에서 고국원왕이 전사한 것이다. 대개 고국원왕에 대해서 그를 비운의 왕이라 보고 그의 시기를 고구려 총체적 위기의 시대라 평한다. 하지만 고구려 고국원왕 시기를 국가 부도의 위기라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고국원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소수림왕 3년, 고구려는 율령을 반포하고 체제정비를 통해 대국으로서의 발판을 마련한다. 그런데 갓 즉위한 소수림왕 때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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